나와 당신
5살 이전의 따스함.
제주의 바다. 따스한 봄. 할머니의 흙내음
제주의 바람. 강렬한 태양. 할아버지의 중절모
제주의 파도. 밤의 달. 아버지의 운전석
그 5년의 시간이 없었다면 나의 세상은 없으리,
그 이후의 시간들이 나의 살과 뼈를 깎아 영혼을 흔들어 놓았으니.
절을 올리러 제주도에 가야한다.
고향땅의 바람이 무섭지만 인사를 드리러 가야지.
백발의 노인
강의 물결을 보아야 한다.
물결을 따라가다 보면 곧 원치 않는 풍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드리운 넓은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 올려다본다.
나를 비추던 태양을 가리는 큼지막한 콘크리트 덩어리들.
품에 고이 모셔온 보따리를 풀어헤쳐 금은보화를 꺼내니,
그들의 눈에는 그저 한낱 캔버스 위 장난일 뿐이다.
슬퍼서 울다, 분노에 발길질을 하다, 황망함에 스스로를 끌어안다.
뒤를 돌아 걸어온 길을 보니 새가 지저귀는 낙원이 보이네.
웃으며 돌아설까, 울음을 머금고 나아가야 할까.
물결을 따라 수많은 콘크리트 덩어리를 넘다 보면 그 위에 올라선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욕망과 현실의 허무함을 가득 품은 보따리를 등에 업은 백발의 노인이 보이네.
강의 물결을 보아야 한다.
물결을 따라가다 보면 곧 원치 않는 풍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적막의 바다. 등을 켠 나룻배의 노를 젓는 백발의 노인.
느낌
아트 프린트에는 묘한 재미가 있다.
디지털 파일 하나만 있으면 세상 어디서든 동일한 퀄리티의 실물 오브제로 태어난다.
용지의 질감부터 두께, 잉크가 스며드는 성정까지.
내가 생각하는 월 아트(Wall Art)의 기준은 단순하다.
그 대상을 마주했을 때, 무엇을 느끼는가?
마치 좋은 음악이 흘러나올 때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듯 말이다.
지나치게 복잡한 해석과 난해한 철학으로 머리를 어지럽히는 현대미술은 와닿지 않는다.
그 거창한 글들은 가치를 포장하기 위한 허상이자, 자본주의 논리의 부산물 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감상하는 이의 고유한 몫이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명화라 할지라도,
나의 감각에 불협화음으로 들린다면 그것은 음악이 아닌 소음에 불과하다.
자신만이 느끼는 미묘한 결.
그것이 곧 미각이자 음감이다.
본능과 직관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11월의 첫눈을 맞을 때나,
새해의 일출을 마주할 때 굳이 머리로 해석을 보태는 사람은 없다.
아름다움이 본질이자 그 고유의 가치라는 것을 믿는다.
물음표
아마추어 창작자는 왜 돈을 멀리하는가.
개인의 숭고한 창작물이 데이터와 숫자의 단위로 상품 가치가 매겨진다는 현실에 헛구역질이 나는 것일까.
자본주의와 돈이라는 매개체의 근본적인 코어는 결국 '거래'다.
화폐는 인간과 인간이 서로의 합의 아래 '가치'라는 개념을 교환할 수 있게 해주는 오브젝트일 뿐,
그 자체로 악이 아니다.
물질이라는 오브젝트 뒤에는 언제나 인간의 욕망과 이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정도의 돈이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겠지. 부동산, 금, 은, 그리고…’
결국 돈이란 개인이 지닌 이상과 욕망을 현실에 투영하고,
그 대가를 상호 간에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정교한 매개체이자 인간 사회의 허상인 셈이다.
화폐의 근본적인 생산 원리와 탄생의 역사를 훑어보면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돈과 물질이라는 개념은 신기루이자 허상이며 매트릭스 라는 것.
하지만 그 허상을 대다수가 믿는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현실이다.
이 고통스러운 매트릭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돈을 벌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욕망의 무지개 끝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아마추어 창작자는 왜 돈을 멀리하는가.
개인의 숭고한 창작물이 숫자의 단위로 상품 가치가 매겨진다는 현실에 헛웃음이 나는 것일까.
무엇이 그토록 숭고한가.
환상을 걷어내고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직관
홀로 살아가고자 한다.
애정하고 애틋하다 여기던 인간들.
몇 안 되는 관계들은 다 허상일 뿐이었다.
그들은 종종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 관계의 우위를 선점하려 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이 늘 게임을 유리한 방향으로 리드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스스로의 전략을 너무 맹신한 나머지 큰 틀을 보지 못한다.
나의 눈은 늘 그들의 영혼을 관찰한다.
나의 오감은 늘 그들의 색을 맛본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어두운 그늘을 단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다.
나는 늘 그들의 눈동자 속 두려움을 지켜보고 있다.